개봉 : 2017.08.24.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한국
러닝타임 : 70분
감독 : 김종관 <조제>, <최악의 하루>
출연 :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한 카페가 있다. 영화 더테이블은 카페 안에 있는 한 테이블에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가 있고,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관계를 대화로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타인의 삶과 대화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 첫 번째 손님
가장 첫번째 테이블에는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과 전 남자 친구 창석(정준원)이다. 유진은 에스프레소, 창석은 맥주를 주문한다. 가벼운 대화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창석은 스타 배우가 된 유진을 신기해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무례와 호기심의 사이에서 아슬아슬 대화를 이어나간다. 대화를 하는 척 은근슬쩍 유진과 관련된 떠도는 소문에 대해 질문을 하는가 하면, 계속해서 증권가 찌라시를 믿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점점 기분이 언짢은 유진.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유진의 어이없음이 화면 밖까지 전해져 나까지 언짢아졌다. 음료 마시면서 생기는 침묵도 너무 리얼했다. 계속 대화를 듣던 유진은 “오랜만에 만나서 나도 네가 이렇게 눈치가 없는 게 새삼스럽다 얘”라고 한마디 던지지만 창석은 끝까지 눈치 없게 사진까지 한 장 찍어달라고 한다. 창석의 머릿속에는 온통 스타 배우 유진과 사귀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정말 정준원도 너무 연기 잘한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처음의 설렘과는 다르게 유진은 이제 가야 한다며 아쉬워하는 창석을 뒤로하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창밖에는 창석의 직장 동료까지 있다. 아쉽다는 창석의 말에 한참 뜸 들이더니 유진도 가면을 쓰고 나도 그래라고 하며 자리를 마무리 짓는다. 그들의 인연은 끝난 듯하다.
# 두번째 손님
두 번째로 테이블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주고받는 남녀가 앉아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는 것이 아닌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과연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여행은 잘 다녀왔냐고 묻고, 집에 두고 간 시계를 전달해주고, 근황을 묻는다.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기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개인적으로 정은채의 연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의 정은채의 연기는 참 좋았다. 민호의 자유분방함이 경진은 당황스럽다. 경진과 민호는 하룻밤을 함께 한 사이이지만 경진은 민호에게 여행에서 조금 더 일찍 올 줄 알았고, 좋은 거 보면 사진 하나 보낼 줄 알았다며 서운함을 표현한다. 민호 역시 하룻밤 보낸 걸로 그래도 되나 싶었고, 여행 간다는 거 알면서도 아무 말도 없길래 그러지 않았다고 하며 서로에 대해서 솔직하지만 답답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경진은 민호의 “경진 씨 저 잘 모르시잖아요. “라는 말에 마음이 상해 일어나려 하지만 그런 경진을 민호는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 하자며 본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나 둘 꺼내는 경진에게 선물하고 싶어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들. 여행하면서 경진에게 연락은 못했지만 경진을 생각하며 하나, 둘 사 온 선물들이 너무 따뜻하고 예뻤다. 그런 민호를 보고 경진은 환하게 웃는다. 이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함께 카페에서 일어선다.
# 세번째 손님
세 번째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여자 손님은 정말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시작한다. 은희(한예리)는 결혼을 준비하는 것 같고, 숙희(김혜옥)는 은희의 친정어머니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 은희는 본인이 시댁에 했던 말들을 숙희에게 꼼꼼히 전달한다. 숙희는 그대로 받아 메모한다. 이 관계는 처음에는 일로 만났지만 대화를 하면서 서로가 진심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돈을 보고 결혼하고 작업했던 은희에게 진짜 사랑이 다가왔고, 숙희는 그 마음을 알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연기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은희의 집에서의 별명은 ‘느림보 거북이’인데 그 말은 들은 숙희는 다정한 눈빛으로 연습을 하는 듯 은희에게 “우리 느림보 거북이 잘 좀 부탁드려요. 애가 착한데도 많은데 행동이 좀 굼뜨고 어릴 때부터 느릿느릿 느려 터졌어요. 절대 게으른 건 아닌데 천성이 느린 데가 있는 아니니까, 느리지만 부지런한 아이니까 우리 훌륭하신 시어른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제가 애지중지 키웠으니까요”라고 말해줍니다. 딸을 잃은 엄마와 엄마를 잃은 딸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걸까요?
# 네번째 손님
저녁이 됐고, 비가 많이 내린다. 운철(연우진)은 혼자 테이블에 앉아 카페 주위를 둘러보다 밖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혜경(임수정)을 쳐다본다. 혜경이 들어와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중간중간 잔소리도 해가며 대화하는데 둘은 무슨 관계일까? 혜경은 결혼을 앞두고 전 남자 친구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결혼을 앞둔 혜경은 운철에게 헤어지라고 하면 헤어지겠다고 하고, 2년간 다른 여자 만나지 말고 자신과 바람피우자고 하고, 결혼식 전까지 바람피우자고 하지만 운철은 모든 걸 거절한다. 이때 두 사람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혜경 :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건지 모르겠어
운철 : 선택을 한거잖아
혜경 : 내가? 난 아무런 선택을 한 게 없는데? 그냥 내몰린 거지... 오늘 같이 있어줄게, 잘해줄게
운철 : 야 솔깃한다
혜경 : 어머, 넘어갔네
운철 : 아니 안 넘어갔어. 오늘 난 우리 집으로 갈 거야. 혜경 씨는 혜경씨 집으로 가고. 이런 걸 선택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선택을 한 거고
혜경 : 나빠 참
운철 : 그래 봐야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 거긴 하지만.
인생은 선택의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처음부터 계속 거절하던 운철은 마지막에 선을 넘어버리고, 처음부터 계속 매달리던 여자는 마지막에 선을 그어버린다. 사랑과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그들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과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감정이 묻어나는 연출이 좋았다. 한 카페, 한 테이블에 앉아 움직임 없이 대화만 하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대화를 엿듣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관계의 사람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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